[기타] '건축을 향하여' 서평 유감(건축역사연구 제11권 4호, 2002년) 이관석 2024-10-29
 

르코르뷔지에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에 대한 서평에 여러 오류가 있어 뒤늦게나마 바로잡고자 합니다.

서평을 쓴 분은 이 책의 원본이 영어판이 아닌 불어판이라는 기본 사실부터 망각하고 있습니다. 비교하신 번역판이 불어 원서를 번역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것은 직역에 가깝고 이관석 번역본은 일종의 의역이다는 판단도 사실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미터체계를 쓰는 프랑스에서 발간된 책인데 번역을 하며 왜 인치, 피트 등을 미터, 센티미터 등으로 바꿔 써 외국어 뉘앙스 전달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Mass를 왜 볼륨으로 번역했느냐고 했는데, 이 책의 영어판에 나오는 가장 큰 오류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실제 불어판에는 volume이 50번, masse가 5번 나오는데, 영어판에는 이 모두를 mass로 잘못 번역했습니다. 영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전 책은 당연히 그 실수를 따라한 것이지요. 르코르뷔지에는 이 책에서 당시 최신 자동차를 설명하며 속이 꼭 차 있고 무겁고 어두운, 엔진이 있는 앞부분을 얘기할 때 masse를, 그 뒤 사람이 타는, 속이 비고 밝은 승차부를 언급하며 volume을 썼습니다. 마치 과거 건축과 근대건축의 차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르코르뷔지에는 과거 건축을 말할 때는 masse를, 근대건축을 말할 때는 volume으로 철저히 구분해 썼습니다. 영어 번역자가 그 차이를 몰랐던  거겠죠.

'Vers une Architecture'를 더 적합하게 보이는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가 아닌 '건축을 향하여'로 번역한 데 대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건축을 향하여'를 제시하셨는데, 길게 적을 수는 없지만 역사와 전통을 매우 존중한(그동안 이에 대한 오해가 많았습니다) 그는 건축의 본 모습 그 자체를 얘기한 것으로 새로움만을 지향하거나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 수렴된 건축을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올)바른 건축을 향하여'라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이관석 번역판이 한국에서 최초로 르코르뷔지에 재단의 번역 허가를 정식으로 받고 작업한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 나오는 사진 일부가 다른 번역판과 달라 가급적 원서에 충실했으면 한다는 언급도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르코르뷔지에 재단은 불어판의 사진 하나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게 하고(르코르뷔지에가 생전에 편집에 관여하고 허가한 것이므로) 번역서의 표지 디자인조차도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원서의 regulating이라고 하셨는데, 불어로는 les tracés régulateurs입니다. 이 용어의 번역을 규준선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어떤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장식이 없어진 근대건축의 파사드에서 잠재된 질서와 품위를 찾는 방법으로 제안된 것입니다. 문과 창의 위치와 크기, 건물의 돌출부나 후퇴부에서 상호 연관성을 수립하기 위해, 독단에 대항하는 보증이자 질서를 통해 정신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주창됐지요. 황금분할을 기초로 한 파사드 정돈법으로 서로 직각을 이루며 만나는 대각선들의 유희, 수평선들 간에 1,2,4 같은 산술적인 질서 관계에 기초한 수학적 정돈응 추구했지요. 그러면서도 그것의 설정은 건축가의 감각에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파사드 전체를 조정하는 방안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실천의 본보기가 되는 표준이라는 의미의 규준을 넣어 규준선보다는 (파사드) 조정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런 서평이 걸러지지 않고 건축역사연구에 그대로 실렸다는 게 아쉽습니다. 쓰신 분을 개인적으로 모르는데,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이 반론이 학회를 통해 그 분께도 전달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