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김성도 회원 『새로 밝힌 한양도성과 경복궁의 역사』 출간 관리자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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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문화유산보존학과 재직 중인 김성도 특임교수가 고려 숙종 때 개창되어 고려 우왕 및 공양왕 때 각각 천도하여 도성이 된 한양도성과 그 법궁의 실제 역사를 밝힌 도서 『새로 밝힌 한양도성과 경복궁의 역사』를 출간하였다.

 

한양도성은 고려에서 도선기에 근거하여 천자의 나라로서 지위와 국운을 이어 나가기 위해 세 곳에 도성을 두는 정책이 중시되면서 고려 숙종 때 천도하기 위해 백악산 궁궐을 갖춘 주 도읍(도성)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완공 다음 해 숙종의 사망으로 천도하지 못하면서 부도읍이 되었고, 이곳 백악산에 건립한 궁궐은 역대 고려 국왕에 의해 중시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 명종 때에도 좌소(백악산)ㆍ우소(백마산)ㆍ북소(기달산) 세 곳에 연기궁궐조성관이 설치되어 세 곳에 도성을 두고자 하는 고려의 정책이 이어졌고, 한양(남경) 백악산의 궁궐은 그 지위를 이어갔다. 이 남경은 충렬왕 때 한양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고려 공민왕에 의해 이곳 한양으로 천도가 추진되면서 고려의 주 도읍에 합당하도록 궁궐 보수 증축과 기존 성곽 수축 등을 비롯해 도읍 정비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그리고 우왕과 공양왕에 의해 각각 한양 천도가 단행됨으로써 삼각산에서 한강에 이르는 고려의 도성이 되었던 곳이다. 그럼에도 조선 개국 세력이 편찬한 《태조실록》에서 태조 이성계가 한양도성을 만든 것처럼 기록하고, 도성 규모를 대폭 축소하면서 《고려사》에서 한양도성 관련 내용을 상당 부분 삭제·축소함으로 인해, 고려의 주 도읍이었던 한양도성의 역사는 대부분 지워지고 왜곡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조선 개창기에 경복궁이라 이름한 한양도성의 궁궐은 고려 숙종 때 백악산 기슭에 처음 건립되었다. 이후 고려 충렬왕 시기부터 충숙왕 시기에 걸쳐 궁궐 앞의 저지대를 높게 쌓아 올려 앞쪽으로 궁역을 조성하고 궁궐 정문과 궁성 등을 건립하여 현재 광화문 자리에 궁궐 정문과 궁성을 쌓아 크게 확장되었으며, 고려 말 우왕과 공양왕 때 단행된 한양 천도로 고려의 법궁이 되었던 곳이다. 이후 역성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함으로써, 이 고려 법궁은 조선의 법궁이 되었다.

 

이러한 한양도성과 경복궁은 임진년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에 따라 도성은 선조와 광해 이래로 재건기를 거쳐 실학에 바탕한 자생적 근대를 이룬 정조의 중흥기를 지나 효명세자를 통해 조선의 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순조에 이르기까지 임진년 이전 모습과 전혀 다르게 왕실 사친 사당이 도성을 이루는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중시되면서, 새로운 모습을 이루며 발전하였다. 이러한 한양도성은 고종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광무 황제 시기를 거치며 황궁 경운궁을 거점으로 서양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근대도시로 새롭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경복궁은 고종 때 조선의 법궁으로 고려 법궁 자리에 재건된 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백악산 정상까지 토성을 두르고, 현 청와대 우측에 태화궁까지 갖춘 웅장한 궁궐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한양도성과 경복궁에 대하여 발굴 조사 및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을 포함한 학술적,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왜곡되지 않은 실제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여 KCI 학술논문 등에 게재한 필자의 논문 및 저서 등을 근간으로 고지도와 옛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직관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한양도성과 경복궁의 실제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 서술하였다. 이로부터 고려시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수도 서울의 일부가 되어 이어져 오는 한양도성에 대해 잘못 알려져 온 역사를 온전하게 고찰하여, 한양도성 내 궁궐, 종묘, 사직단, 문묘 및 학당 등 주요 건축물의 역사와 함께 도성 성곽의 주요 역사를 새롭게 밝혔다. 또한 고려시대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한양도성의 법궁이 되었던 경복궁의 역사를 밝혔다.

 

이와 함께 한양도성과 그 법궁에 대한 실제 역사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 원인도 상세히 살펴보았다. 고려의 한양도성과 그 법궁을 고려가 아닌 조선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왜곡하여 기록한 《태조실록》과 별개로, 그 근본적ㆍ실제적 원인이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과 문화 말살 및 역사 조작ㆍ왜곡에 있음을 고찰하였다.

즉, 조선 중기에 일본이 외국 정벌에 나서 명을 치기 위해 조선에 길을 안내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자 임진년(1592)에 명으로 가는 길목인 조선 침략에 나서면서, 이 전란으로 인해 한양도성과 그 안에 있는 궁궐, 종묘, 사직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물이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그 결과 고려시대 이래로 조선 전기까지의 도성 내 건축물 등이 사라졌고,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까지의 역사적 흔적이 땅 속 유구 외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말 일본은 재차 외국 정벌에 나서 오키나와, 러시아, 조선, 만주, 청, 미국, 동남아로 그 침략 범위를 넓히는 가운데, 러·일전쟁 직후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시기에 걸쳐 한양도성과 그 안의 궁궐 등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대부분의 건축물을 훼철하여 없앴고, 그 역사 기록을 지우고, 조작ㆍ왜곡하였다. 그 결과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재건하여 새롭게 발전시킨 한양도성과 궁궐 등 그 안의 건축물이 대부분 훼철되어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실체가 사라진 상황 속에서 일본의 역사 기록 조작과 왜곡된 용어로 만들어낸 거짓된 역사 기록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 사례와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상세히 밝혔다.

 

이 책은 우리 역사ㆍ문화의 중심지였던 한양도성과 경복궁에 대하여 그동안 잘못 알아 왔던 내용을 실증적ㆍ과학적으로 고찰하여 제대로 밝히고,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그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도록 건축물 변형과 함께 조작한 사진ㆍ지도ㆍ관찬 자료ㆍ용어 등을 활용하여 실제 역사와 다르게 폄하ㆍ왜곡ㆍ조작한 내용 및 방식까지 상세히 분석 파악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김성도 특임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건축사 분야를 전공(학사·석사·박사)하고,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2년부터 2년간 니혼대학교(Nihon Univ.)에서 해외 박사 후(Post Doc.) 과정을 수행 후, 국가유산청에서 2006년부터 국가유산 보존관리 업무를 하였으며, 정년퇴직 후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한국건축사와 국가유산에 대하여 강의ㆍ연구하고 있다.